‘한국의 과학과 문명’ 4∼6권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과학은 여전히 단선진화론이 지배하는 분야다. 이는 인류가 저급 단계에서 고급 단계까지 일직선의 길을 따라 발전한다는 인식이다. 선사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단선진화론의 한 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조선의 과학기술은 서구에 비해 뒤떨어졌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1860∼1870년대 한반도에 접근한 서양 선박은 강력한 무기와 뛰어난 항해술로 조선군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조선의 과학기술사를 재조명한 신간 세 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이 연구소가 10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4∼6권이다.
저자들은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조선시대의 과학이 세종 대에 융성했다가 곧 정체기에 접어들었던 탓에 왜군과 청군의 침입을 받았고, 이후 중국을 통해 ‘새로운 과학’을 수용했으나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단선론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다.
구만옥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의 과학적 업적을 살펴본다. 그는 근대과학의 관점과 중화주의적 관점을 지양하고 동아시아 세계질서라는 큰 틀로 역사를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세종이 집권했을 당시는 국가가 안정되지 않아 기틀을 다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세종은 중국의 선진 과학을 수입하면서도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풍토부동론'(風土不同論)을 펼쳤다.
저자는 세종이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지식과 중국을 통해 들어온 이론을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독자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고 강조한다.
‘조선후기 과학사상사’는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17세기 이후 조선 과학과 서구 과학이라는 이질적 학문이 결합하고 충돌한 과정을 들여다본 책이다.
문 교수는 서양 천문학 학설을 동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문신 서명응을 예로 들면서 사대부들이 성리학적 인식 체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구 과학을 적극적으로 학습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서구 과학을 공여자, 조선 과학을 수용자로만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김연희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구교수는 ‘한국 근대과학 형성사’에서 조선 후기에 가장 논쟁적인 군주인 고종 치세의 과학을 다룬다.
집권 초기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지켜봐야 했던 고종은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은 뒤 서양 무기를 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무기를 운용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했고, 국가 통치 체제를 바꿔야 했다.
저자는 개항 전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서양의 근대 과학기술이 유입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조선과 대한제국이 교통 체계와 통신 제도를 어떻게 개혁했는지 조명한다.
들녘. 각권 406∼472쪽. 각권 3만3천∼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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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8843098&sid1=001&lfrom=kakao